카테고리 없음

[강원/속초카페/영랑호카페] 보드니아

WickeDio 2021. 10. 10. 16:28

 나는 강원도 여행을 무척 좋아하는 편인데 주로 강릉이나 속초, 정선, 봉평, 평창 쪽으로 가게 된다. 거의 지역마다 내가 좋아하는 카페가 하나씩은 있는데 맛으로 승부하는 곳도 있고 뷰나 분위기로 승부하는 곳도 있다. 이번에 다시 다녀온 '속초카페'는 맛과 분위기로 승부하는 곳이다. 이곳은 원래도 지역에서 커피가 맛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는 것 같고, 로컬 사람들이 많이 찾는 아담하면서도 깔끔하고 편안한 곳이다. 

 해안가의 멋진 뷰를 가진 카페가 많지만 맛있는 곳을 찾기 쉽지 않은 속초에서 귀중한 카페라고 생각이 든다. 속초에서 맛있는 드립커피와 조용한 분위기를 즐기고 싶다면 카페 '보드니아'로 가면 된다. 


 '보드니아'에서는 주로 '드립커피'를 먹었다. 메뉴를 보면 드립커피를 먹지 않고 배길 수가 없다. 원래 나는 블렌딩 드립보다 싱글오리진 커피를 선호한다. 하지만 보드니아 카페의 사장님의 낭만과 철학이 담긴 메뉴판을 보고있자면 어느새 블렌딩 드립커피를 주문하고 있는 나를 볼 수 있다. 마치 빨려들어가며 홀리는 느낌...... 사장님은 책이나 영화 등의 문화 컨텐츠를 굉장히 좋아하시는 듯하다. 블렌딩 원두마다 그 원두에 어울리는 이름을 붙여 놓으셨고, 짧은 한 줄의 인용도 있다. 계절 블렌딩도 어찌나. 네이밍을 잘하셨는지 정말 다 시켜먹고 싶은 것을 꾹 참고, 고심 끝에 '달의 호수'를 주문했다. 저번에 먹었던 '숲의 시계'도 나름 좋았기 때문에. 


카페. 보드니아의 핸드드립 메뉴


 계절 메뉴 가을 블렌딩인 '가을의 전설'도 시켜보고 싶었으나 일단 참아보았다. 나는 '김윤아'와 '자우림'의 팬이기 때문에 사실 봄 블렌딩인 '어느 봄날'을 정말 정말 주문하고 싶었으나 봄이 아닌 관계로 내년 봄에 찾아오기로 결심했다. '봄날은 간다'의 가사 한 구절을 읽는 순간 마치 가수 김윤아의 매력적인 분위기와 목소리가 원두에 더해지는 기분. 내년. 봄에 무조건이다.(지극히 주관적이고 팬심 가득한 묘사)

 메뉴로 살펴 볼 수 있었던 사장님의 감성이 나는 참 좋다. 메뉴별 향미 평가도 있어서 큰 범위의 아로마를 예측할 수 있도록 가이드 해준다. 저번 방문 때 '숲의 시계'를 주문했던 이유는 '새콤'의 맛 비율이 다른 메뉴보다 높았기 때문인데, 사실 내가 주로 선호하는 정도의 '산미'보다는 약했다. 요즘 많은 곳에서 원두를 예전보다 약하게 볶고 있다. 아로마와. 향기를 더 끌어올리기 위한 배전도일텐데, 이곳은 요즘의 스타일보다는 더 배전도가 높다. 그래서 산미가 있어도 내가 좋아하는 코끝에서 '베리'나 '꽃' 등의 향기가 맴돈다기 보다 맛 자체에 살짝 산미가 있는 스타일이라고 생각이 든다. 한 모금 묵직하게 넘어가면서 후미에 살며시 치고 나오는 그런 산미. 그래서 이번에는 아예 묵직하게 가보자 하며 골랐지만 결국 산미를 포기할 수 없어 '달의 호수'를 주문하고 말았다.


깔끔함 그 자체 핸드드립 메뉴 '달의 호수'

 앞서 말했 듯 배전도가 낮은편은 아니라 묵직하고 몽글몽글한 바디감이 목을 부드럽게 스쳐간다. 전반적으로 상당히 매끄러운 맛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기존에 '카페골든웨이브'나 '노매드로스터스'가 아로마 위주의 커피였다면 '보드니아'는 마치 강릉 '박이추'의 '보헤미안'과. 비슷한 느낌이다. 묵직하고 고소하고 바디가 좋고 부드러운 목넘김을 선호한다면 보드니아의 커피가 잘 맞을 것이다. 커피에 설탕도 같이 올려 주시는데 설탕을 넣어 먹는 편이 아니라 먹어보진 않았지만 이런 커피라면 설탕을 넣어 먹어봐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달달하면서 마일드한 블랙커피일까 싶다. 아직 '숲의 시계'와 '달의 호수'밖에 먹어보지는 않았지만 전반적으로 아로마가 시시때때로 변하면서 일렁이는 재미는 없지만 일관적이고 담담하며 묵직한 맛이다.

 


보드니아의 시그니처 메뉴 '설악슈페너' 

 핸드드립만 맛보기는 아쉬워서 에스프레소베리에이션인 '설악슈페너'를 먹어보았다. 역시 속초카페인가 싶은 네이밍! 이런 특색을 살리는 메뉴가 있는 것이 나는 너무 좋다. 흔한 아인슈페너보다는 이런 네이밍센스로 정체성을 강화하는 그런 느낌. 내가 '묵리459'의 색깔을 좋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설악슈페너'의 포인트는 크림 위에 수줍게 올려져 있는 갈색의 얼음설탕(?)이다. 설악산의 '바위'를 형상화한 것 같은데 식감도 단맛도 더해주는 그런 포인트다. 크림과 갈색설탕이 '설악(雪嶽)'과 바위 그 자체다. '설악슈페너'의 맛은 여느 아인슈페너와 비슷했고 당도와 커피의 농도를 섬세하게 잘 맞춘 느낌이었다. 하지만 역시 나는 드립이 더 좋다. 드립보다 달달한게 좋다면 보드니아에서만 맛 볼 수 있는 '설악슈페너'를 추천한다. 

 카페 내부를 쓱 둘러보면 하나하나 공들인 것 같은 인테리어와 소품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다른 카페보다 드립포트들이 본격적으로 놓여있고, 동드립포트가 눈길을 끌었다. 역시 감성은 동드립포트다. 눈에 띄는 점은 수동식 에스프레소 머신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역시 아날로그 감성이다. 수동식 에스프레소 머신만의 느낌이 있는데 '보드니아'에 꽤 잘어울린다. 에스프레소만 단독으로 주문해서 먹지는 않아서 맛을 표현할 수는 없지만 '설악슈페너'의 맛으로 미루어 짐작해보면 크레마가 잘 나오는 바디감 좋은 에스프레소가 아닐까한다. 물론 배전도가 높은것도 한 몫하겠지만. 

 


커피바의 내부 수동식 에스프레소머신, 바라짜 그라인더와 클레버, 모카포트도 보인다.


직접 로스팅한 원두가 진열되어 있다.


카페를 천천히 둘러보면 카페홀 반대쪽에 로스팅룸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유리에 물백묵으로 메모 되어 있는 로스팅 히스토리를 볼 수 있다. 언뜻 보기에 로스터는 프로밧이었던 것 같다.


깔끔한 로스팅룸과 뷰티풀마인드가 스쳐지나가는 물백묵 메모

 사실 카페를 들어오자마자 내 눈을 팍 사로 잡은 것은 더치커피 추출기구였는데 출입문에 들어서자마자 볼 수 있기도 하지만 내가 쓰는 것과 같은 것이어서 반갑기도 하고 눈이 가기도 했다. 모이카 1500과, 미라클 1500을 사용하시는데 두개씩 놓여있었다. 


모이카와 미라클, 맞다 인생은 맛없는 커피를 먹기에 너무 짧다.

  아무래도 같은 기구를 쓰다보니 컨테이너에 담긴 원두의 양과 추출양이 가늠이 되긴 했지만 맛이 궁금했다. 보드니아가 해석한 더치커피는 어떤 맛일지, 궁금해서 더치커피를 주문했다. 


아이스 더치커피


 핸드드립이 너무 맛있어서 그랬는지 '더치커피'는 내 기준에 맛있다고 느끼기엔 임팩트가 약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자주 찾는 단골의 입맛에 맞춘 것일 수도 있겠지만 더치커피에서 기대하는 특유의 향과 뒷맛이 약했다. 쓴맛이 많이 없고 연한 느낌의 더치였지만 좀 아쉬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원액 자체가 좀 연한 느낌. 아마 같은 내가 먹었던 핸드드립용 원두와 더치 원두를 같이 쓴다면 높은 배전도에서 나올 수 있는 씁쓸한 부분을 감소하기 위해 이렇게 연할 수도 있겠으나 어쨋든 나의 입맛으로는 더치커피는 따로 주문하지 않을 것 같다. 핸드드립의 완승.

 혹시나해서 메뉴를 보니 더치커피를 따로 병입으로 주문할 수도 있었다. 이 경우는 원두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보드니아의 블렌딩 원두들로 만든 더치커피와 싱글오리진 원두로 만든 더치커피 등 내 기억으로 총 8개 정도의 맛을 선택할 수 있었다. 주인 분에게 방금 주문한 더치커피는 어떤 원두냐고 물어보니 카페에서 주문해서 먹는 더치와 병입더치는 다르다고 하셨다. 그래서, 결국 병입 더치 250ml 두병으르 주문하게 되었고 '숲의 시계' 블렌딩 더치와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더치를 골랐다. 아무래도 내가 에티오피아 더치가 익숙하다보니 맛을 보기가 수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더치 두병을 다 시음해본 바로는 카페에서 먹었던 것 처럼 전반적으로 향과 맛이 약했고 에티오피아 더치도 내가 생각하는 에티오피아의 아로마를 잘 살리지는 못했다고 생각한다. 뭐 이건 어디까지나 바리스타의 취향이고 배전도에 따른 최선책일 수도 있다. 아닌게 아니라 바디감과 매끌거림은 상당히 훌륭했다. 농도도 아무래도 바로 얼음같은 것을 넣어 먹을 수 있도록 약하게 해놓은 것이 아닐까 싶은데, 나에게는 맞지 않는다. 내 기준, 내가 원하는 더치맛이 아니기 때문에 굳이 이런 느낌이라면 더치를 주문하지 않겠다는 것 뿐. 보드니아의 더치스타일은 이렇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영랑호수를 앞으로 두고 있는 카페 홀, 주차장도 카페 좌석수에 비례하면 넓찍한 편.


마음에 드는 가로창문, 콘크리트 벽과 초록초록 가로 창문이 은근 잘 어울린다.

 


노출식 콘크리트와 은은하면서도 밝은 느낌의 분위기가 참 좋다. 물론 창문 밖의 초록뷰가 제일.

 카페가 참 조용하고 책 읽기 좋은 느낌이다. 호수 산책하던 단골들이 들어와 살짝 담소를 나누기도 좋은 것 같고, 무언가 할일을 하러 오기에도 좋다. 사장님의 철학과 철칙이 명확히 있는 것 같은 그런 카페. 커피 맛을 떠나서도 공간으로서 매우 훌륭하다. 


코로나 방역지침과 관계없이 카페의 조용한 분위기를 위해 4인까지만 입장한다고 한다.

 아마 단골들이 이런 카페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카페의 분위기를 위해 소음을 조절하기 위한 방편으로 방역지침과 관계없이 4인까지만 입장이 가능하다고 한다. 보통 '힐링', '릴렉스', '고요한 분위기'의 컨셉을 자처하면서 막상 이용객의 관리를 하지 않아 단순한 '뷰'카페로 전락하는 곳을 많이 보았다. 그런 면에서 '보드니아'는 언제든 방문하면 조용히 쉬었다 갈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이런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개인적으로 나는 참 좋았다.

  '보드니아'는 커피 주문 후에 테이블로 가져다주고, 커피를 다 마시고 나면 다 먹은 잔을 손님이 갖다 놓는 것이 아니라 그냥 테이블에 두고가면 된다. 뭔가 대접받는 기분. 바리스타는 커피 제조 후 서빙과 메뉴에 대한 설명까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커피의 주문부터 추출, 정리까지 카페의 주인이 정성을 보여주는 그런 기분이 들어서 참 좋았다. 바리스타 자격과정에서 '서빙' 파트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애티튜드는 정말 좋다. 이런 감성이 요즘 카페에 찾아보기가 힘들어서 그런지 더욱 소중하게 여겨진다. 


카페 앞 주차장 한쪽 벽

 보드니아 카페에서 커피 한잔 하고 나오면 넓은 주차장 왼쪽으로 이런 귀여운 벽이 있다. 흔들리는 풀을 구경하다가 전면을 바라보면 영랑호가 펼쳐져 있어서 날씨 좋은날 방문하기 참 좋다. 커피를 테이크 아웃해서 마시면서 영랑호 주변을 걷기에도 좋은 위치이다. '보드니아'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도를 지키는 카페인 것 같다. 커피 맛도, 분위기도, 공간도, 그냥 잠시 쉬어갈 수 있고 편안하게 방문할 수 있는 그런 곳. 속초에 방문할 때 마치 친척 집 가듯 나에게 갈 곳이 정해져 있는 그런 느낌이다. 속초시의 특별한 공간! '보드니아'가 지역 주민에게 오래 오래 사랑 받았으면 한다. 


★ 포인트 
 1. 맛: 핸드드립 커피가 매력적인 곳, 부드럽고 몽글거리는 바디가 매끄러운 드립커피를 원한다면 좋아할 것 같다. 이런 매끄러운 바디를 포인트로 로스팅 하는 것 같다. '보드니아'에서 맛 볼 수 있는 '설악슈페너'도 아인슈페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추천한다. 핸드드립은 맛있지만 나에게 더치커피는 그닥. 수동식 에스프레소 머신을 이용해서 에스프레소를 추출한다. 아날로그적 감성도 물씬.

 2. 분위기:  계절메뉴와 블렌딩 원두 네이밍도 사장님의 철학이 물씬 풍긴다. 왠지 메뉴를 한번씩 시도하고 싶고, 설명된 영화나 책도 읽어보고 싶다. 공간이 주는 느낌과 분위기는 굉장히 차분하면서도 따듯하다. 노출식 콘크리트 벽에 창문과 풍경으로 포인트를 주었다. 볕도 잘 들고 호수가 슬쩍 보이는 뷰라서 조용히 쉬었다가기 좋으며 책을 읽어도 좋은 분위기. 기본적으로 이용객들이 조용하고 카페 자체에서 조용한 분위기를 선도한다. 커피맛도 좋고 공간도 안락하고 조용하다.

 3. 접근성:  카페 바로 앞에 주차공간이 마련되어있다. 엄청 크지는 않지만 좌석수에 비례해서 꽤 널널할 것 같다. 영랑호 주변이라 산책하다 들리기도 좋을 것 같다. 장사항에서도 가깝다. 속초에 방문한다면 한번쯤 들러보기 좋다.

 4.기타: 채광 좋고 청결도 좋고, 커피 주문부터 서빙, 그리고 정리까지 친절하다. 동네 사랑방 같은 느낌이기도 하면서 적절한 거리를 두며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는 그런 따뜻한 공간. 아, 책들의 구성도 좋았다. 

+
☆ 맛있는 핸드드립 커피, 가족과의 나들이, 분위기 전환, 나만의 차분한 시간이 필요할 때. 영랑호 산책하다 커피 마시고 싶을 때, 책 읽고 싶을 때, 속초 여행 할 때.